<마이클 코넬리 “배심원단” The Gods of Guilt>
아는 사람은 아는 인기작가 마이클 코넬리 선생의 ‘링컨차를 타는 변호사’ 미키 할러 시리즈 제5편 “배심원단”이 번역출간되었다.
기자출신인 마이클 코넬리는 엄청난 다작인 작가이다. 1992년 "블랙에코"로 데뷔한 이래 지금까지 장편으로만 32편을 내놓았다. 거의 스티븐 킹 급이다. 1년에 장편 1-2편은 꾸준히 내고 각각의 작품의 질도 평균이상이니 대단한 작가이다.
문제는 국내에서 번역서가 나오는 주기가 점점 늦어지고 있다는 것. 이 책도 2013년에 미국에서 출간되었는데 올해야 한국어 번역서가 나왔다. 코넬리는 당시의 시사적인 내용이나 신문물(금융위기, 디지털카메라, SNS 등등)을 배경이나 소재로 삼는 장점이 있는데, 번역출간이 시차를 두다 보니 이런 묘미를 충분히 살리기 어려운 문제가 부수적으로 발생한다.
변호사가 주인공인 미키 할러 시리즈는 물론, 형사물인 해리보슈 시리즈에서도 풍부한 연구와 사전작업으로 법률적인 내용에 대한 묘사와 이를 도구로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가는 점이 마음에 든다.
주인공 미키 할러는 전작 ‘다섯번째 증인’ 말미에서 지방검찰청장 선거에 나서겠다고 하는 언급을 하며 그 뒷이야기를 독자들에게 궁금하도록 하는 장치를 깔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 선거에서 떨어져 다시 본업인 형사사건 전문 ‘속물’변호사로 활동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역시나 "조금 억울해 보이지만, 도덕적으로 별로 동정이 안가는" 의뢰인 안드레 라 코세는 일종의 디지털 포주. 온라인으로 성매매를 알선해주고 금전을 뜯어내는 사람이다. 두둑한 수임료를 받기로 하고 수임계약을 하였는데, 알고보니 그가 죽였다는 혐의를 받는 살인사건 피해자 지젤 델링거는 1편 ‘링컨차를 타는 변호사’에도 나왔던 예전의 고객으로 대리했던 글로리아 데이턴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이 과거 의뢰인에 연관되어 무기징역형을 받았던 마약 카르텔 두목의 사건이 다시 문제가 되면서 외관상 아무 상관없을 것 같았던 두 사건의 연결고리와 그 뒤에 숨은 진실을 밝혀가는 과정이 흥미진진하다. 그 와중에 다양한 미국 형사법정에서 이야기되는 다양한 법적이슈 - 이해상충, habeas corpus, 전문증거 등-를 마구 첨가하여 만족도를 높인다.
아쉽지만 줄거리 소개를 좀 더 추가하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형사쪽 일 하시는 분들은 더 재미있게 보실 수 있을 듯. '컨플릭트 앱' 이라는 변호사 사무실용 소프트웨어도 등장한다.
사족으로 한마디만 하면, RHK에서는 번역서의 제목을 좀 신경써서 달았으면 좋겠다.
코넬리는 중의적인 표현을 쓰면서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를 담는 제목을 다는 작가인데, 번역 제목은 이를 제대로 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미키할러 시리즈 3편 제목은 “파기환송”이다. 우리 법에서 파기환송은 법률심인 대법원에서 사실심의 판결이 잘못되었다고 다시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내는 것을 말하지만, 소설 내용은 확정된 판결에 대해 새로 DNA증거가 나왔으니 다시 해보자. 즉 '재심'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영어 제목인 'reversal'은 판결을 상급법원에서 뒤집는다. 즉 다른 결론을 낸다는 뜻도 있지만, 전환, 반전, 역전이라는 의미도 있다. 속물변호사인 미키할러가 검사가 되어 활약한다는 reversal이라고 제목을 단 것인데, 그런 느낌은 살지 않는다.
4편 “다섯번쨰 증인”은 오역에 가까운 제목달기이다. 소설 내용상 5번째로 등장한 증인이 가장 핵심적인 대상이었다는 내용에 착안해 번역제목을 붙인 듯 하나, the Fifth Witness는 미국 헌법 수정5조에 나오는 '자기부죄금지 특권‘을 들어 진술을 거부하는 증인이라는 의미로 사용한 것이고, 그런 묘사가 나온다. 역시 영어 특유의 표현을 통한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이번 책 역시 ‘The Gods of Guilt“는 "배심원단" 이라고 번역했는데, guilt. 죄책감의 신, 유죄임을 판단하는 신들이니 결국 형사법정에서는 이러한 신들의 역할을 하는 것이 배심원들이라는 의미이긴 하다. 본문에서 주인공 미키 할러의 아버지가 배심원들을 그렇게 불렀다라는 말이 나오기도 하지만 좀 무뚝뚝한 제목달기가 아닌가 싶다.
하긴, 써놓고 보니 짧은 한글판 제목에 이런 뉘앙스까지 담기는 어렵겠다는 고충은 이해가 되기도 한다.
사족이 더 길어진 이상한 감상이 되어버렸지만, 여하튼 주변에 추천합니다.
'책과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넷플릭스] 미디어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법적 분석 - 넷플릭스 다큐 '미디어 재판 (Trial by Media)' (1) | 2020.05.17 |
---|---|
[영화] 비밀정보원이된 천재야구선수 모 버그 일대기 "더캐처워즈어스파이" (0) | 2020.03.29 |
[책] 블랙박스, 마이클 코넬리 #해리보슈형사 시리즈 16편 (1) | 2019.09.29 |
[PBS다큐] 넷플릭스에서 찾아본 베트남 전쟁 10부작 다큐 Vietnam War (0) | 2019.09.15 |
[책] 6.25전쟁 출격 100회 전투조종사 김두만 장군 <항공 징비록> (0) | 2018.09.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