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 일본원자력발전의 수상한 역사와 후쿠시마 대재앙>
앤드류 레더바로우 지음 / 안혜림 번역, 2022 브레인스토어
원제 Melting Sun : the history of nuclear power in Japan, and the disaster at Fukushima Daiichi
녹아버리는 일장기 모양 그야말로 "Melting Sun" 모습의 표지 디자인이 강렬하다.
큰 제목 '후쿠시마'만 보고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의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야기를 다룬 것인줄로 예상했으나, 실제 펼쳐보니 일본의 전력산업의 역사와 원전의 문제점을 전반적으로 다루는 책이다.
일본의 개항과 그 이후 시기인 19세기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전기, 전력산업의 역사를 일본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왜 일본 동쪽은 50Hz, 서쪽은 60Hz의 주파수를 사용하게 되었고 이게 지금까지 이어지는가 등등) 일본이 2차대전 패전 이후 전쟁에서 복구하면서 어떻게 원자력 발전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는지를 살펴본다.
일본은 무엇보다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사상 최초로 원자폭탄의 실제 투하 피해를 입은 나라이고, 1954년의 미국이 태평양 비키니 환초에서 수소폭탄실험을 할 때 인근에서 조업하다가 방사능 피해를 입었던 어선 제5후쿠류마류 사건 (사진 3)도 겹쳐 반핵여론이 높을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이러한 사회분위기를 반전시키고 ‘평화를 위한 원자력’을 홍보하기 위해 정부, 산업계, 언론이 노력했으며 이 과정에서 미국은 물론 영국도 지원했다.
원자력발전의 성공이라는 공동의 이해관계를 두고 모인 개인과 조직의 비공식적인 집합을 ‘원자력 마을’이라고 불렀다는 언급이 있는데 (139쪽), 미쓰이, 히타치, 도시바 등의 제조사, 전력회사, 학자, 언론사, 금융기관, 건설회사, 관료, 정치인 등을 포괄하는 말이라고 하니 요즘 우리 표현으로 하면 원자력 마피아 쯤이 아닐까? 일본어 표현으로는 '닛폰 겐시료쿠 무라(ニッポン原子力村)' 라고 한다.
공학에는 문외한이라 내용이 어려울 줄 알았지만 문화, 사회, 법적인 내용이나 정부조직, 규제위원회 등의 내용이 등장하여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지진재해가 많은 일본의 특성상 안전관련 대비에 신경을 쓸 수 밖에 없기에 이에 대한 규제는 꾸준히 시도되어왔다.
정부와 기업의 대응과정을 복기해 보는 것도 의미있다. 일본에서의 전력산업법, 원자력기본법, 전원개발법 등의 법제발전이나, 원자력위원회, 원자력안전위원회 조직의 신설과 강화의 과정, 원전관련 전문성이 부족한 관료제의 문제, 전관들의 퇴직후 기업체 취업 등과 같은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풍경도 있다.
원전의 개발과 이용 과정에서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고와 재해가 세계에서 발생했고, 일본에서도 심각한 사고들이 이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본이 만든 최초의 원자력 추진선박 '무쓰'의 건조와 문제들, 야심차게 시도했던 고속증식로 방식의 몬주 원자로의 문제점들, 1999년 인명사고로 이어진 도카이무라 핵연료재처리시설 방사능유출사고(사진4)등이 있었다.
후쿠시마를 비롯하여 다수의 원자력발전소와 관련하여 여러 전문가들이 쓰나미가 발생하면 그 피해가 사고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여러 번 경고하고 보완을 말했지만 일부는 수정되었으나 상당수가 무시되었다는 점을 서술하고 난 뒤, 전체 분량의 거의 3/5가 지나서야 비로소 2011년 후쿠시마 사고로 넘어간다.
사건의 경과는 드라마 ‘더 데이즈’에 묘사된 내용과 거의 유사하다. 다만, 우리가 알고 있는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후쿠시마 "1원전"(원자로 6기)이고, 바로 옆 불과 12km 떨어진 후쿠시마 "2원전"(원자로 4기)에서도 쓰나미 비슷한 문제가 있었는데 다행히 현명한 대처로 잘 수습되어 지나갔었다는 것은 새롭게 알게 되었다. (사진5)
주변 전문지식이 별로 없고 예전 산업부 관련 법령을 담당하면서 에너지 분야 자문에 일부 참여해본 수준이라 깊은 이해는 어려웠지만, 우리 입장에서도 두고두고 연구하면서 타산지석으로 생각해볼 부분이 많은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대단한 것은 일본의 전력산업과 원자력 발전에 대하여 이런 책을 쓴 저자 Andrew Leatherbarrow. 저자는 체르노빌 사고에 대한 저술로 유명해진 작가라고 하는데, 원전 분야의 전문성과 별도로 일본의 제도, 문화, 역사를 관통하는 이러한 단행본을 영국국적인 작가가 썼다니 그의 배경에 대하여 궁금해진다.
아쉬운 점 몇 가지.
우선,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피해복구와 그 이후 단계에서 사고가 향후 환경과 건강에 대해 미쳤고 앞으로도 미칠 악영향에 대하여는 그다지 심각하지 않게 담담하게 넘어가려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는 점이다. “2011년 도쿄전력이 기준치 100배에 가까운 오염물질을 함유한 물 1만톤을 무단방류했지만 바다에 희석되면 해를 끼치지 않을 양이다”라고 서술하는 식이다. 지속적으로 주변에서 유입되는 지하수가 원전을 통과해서 나가는 오염수를 막으려는 동토차수벽이나 방류 문제에 대하여도 건조하게 다루고 있다.
가장 큰 불만은 결말 부분이다. 저자는 수많은 안전관련 규제 회피가 발생했었고, 일본 원전과 관련한 부패사례가 지속적으로 불거졌다며 문제를 제기하면서 "예고없이 찾아오는 재난은 드물다"며 챌린저호 폭발이나 딥워터호라이즌 폭발사고, 인도 보팔 참사, 체르노빌 사고 등에서처럼 전문가들은 피할 수 있었던 참사를 막아보려고 노력했지만 권력을 쥔 이들에게 묵살당했던 사례를 경고한다. 그렇지만 한편 “규제기관이 모든 것을 고려하여 (더 강력한 규제를 만들었더라면) 아무것도 건설하지 못했을 것이다”라는 언급도 한다.(394쪽)
저자는 “일본에서 점점 더 많은 원자로가 재가동 승인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충분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이 충분한 차이를 만들어내기에 충분한 교훈을 얻기를 바란다”고 마무리를 짓고 있는데, 과연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 구체성이 떨어지는 애매한 결말이다. (2023.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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