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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콜디스트 윈터- 한국전쟁의 숨은 역사와 맥아더 장군에 대한 냉정한 평가

더사문난적 2009. 8. 12. 18:39

 

 

 

한국전쟁의 감추어진 역사 ‘The Coldest Winter'

데이비드 헬베스템 저, 정윤미, 이은진 역 살림출판사, 2009

 

무려 1,081페이지짜리 ‘콜디스트 윈터’를 읽었습니다. 1천페이지가 넘고, 가격도 4만8천원에 달하는 거의 목침만 한 책이라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여름휴가를 빌어 가까스로 볼 수 있었습니다.

 

1950년 말, 중공군과 미군과의 첫 전투장면을 소개하면서 책이 시작합니다만, 한국전만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고, 1950년 전후의 미국의 사정, 한국의 분단과 전쟁에 대비한 미국(남한)과 북한(소련), 중국의 공산화와 대만(장개석) 세력에 대한 미국 내의 정치적 고려 등을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여기에 전쟁 자체에 대한 묘사도 자세해서 꼼꼼히 읽어보아야 할 만한 내용이 많습니다. 미국인인 저자이지만 많은 사료를 참고하고, 많은 사람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상당히 객관적인 시각을 견지하려고 노력했다는 느낌이 들게 합니다.

 

특기할만한 것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과 그의 부하들에 대한 냉정한 평가입니다. 맥아더에 대하여는 인천의 맥아더 동상에 대한 논란에서도 보듯이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대한민국의 구세주로 호평을 받아온 것이 사실인데 - 어찌 보면 거의 이순신 장군급으로- 이 책에서는 많이 다른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한국전쟁뿐 아니라 그 이전, 맥아더의 아버지인 아서 맥아더와 어머니의 이야기를 통해서 맥아더 부자가 갖게 된 정치인에 대한 혐오 내지는 동경의 경향을 이야기하고, 맥아더의 지휘능력에 대하여도 냉정한 평가를 합니다. 일본의 진주만 기습에 이어 당시 식민지였던 필리핀에 대한 공격이 예상됨에도, 제때 대응하지 못하고 필리핀을 내준 것과, 자만심에 빠져 한국전쟁에서 중공군의 개입에 대하여 대비를 하지 못하고 엄청난 패배를 맛본 것도 맥아더의 책임이지요.

 

재미있는 것은 한국전쟁 동안 맥아더는 한반도에서는 단 하루도 밤을 보내고 머무른 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계속 동경에 있는 사령부에서 왔다갔다했을 뿐이죠. 한국전 당시 맥아더가 보고 싶은 정보만 걸러낸 정보참모 찰스 윌로비와 능력없는 참모장 알몬드에 대한 냉혹한 평가도 이어집니다. 낙동강 방어를 훌륭하게 수행한 미8군 사령관 워커 장군과 병렬로 10군단을 따로 만들어 에드워드 알몬드 장군에게 주어 지휘하게 하면서 북진작전을 나누어 경쟁하게 한 것은 엄청난 전략적 실수라는 말도 나옵니다. 1948년에는 현역군인 신분임에도 맥아더가 미국 공화당 대통령 예비선거에도 나갔다(하지만 아주 낮은 득표를 했음)는 사실도 이 책을 통해 알았습니다. 

 

 

 

 

* 맥아더의 참모장 알몬드 장군 

 

정치적 야심이 강했던 정치군인 맥아더는 인천상륙작전을 마지막 성공으로 해서 몰락하게 되는데, 저자는 인천상륙작전 이후에 바로 물러났으면 여러 가지로 좋았을 것이라는 분석도 하는군요.

 

저자는 8군 사령관 워커장군과 1해병대사령관 스미스 소장에 대하여는 좋은 평가를 내립니다. 이들이 훌륭한 결과를 가져왔음에도 별다른 포상을 받지 못한 것도 맥아더와 알몬드의 질시와 편견 때문이라고도 하지요. 

 

 

 

 

 

* 워커장군과 패튼

 

50년이 넘게 현역으로 활동하고, 1,2차대전에 이어 한국전쟁까지 모두 참전한 특이한 경력의 맥아더는 뛰어난 군인이고 전략가로서 칭송받고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비판의 목소리도 큽니다. 어찌보면, 미국에서 맥아더의 이름을 딴 무기체계가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은 그에 대한 인간적 평가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그와 비견되었던 니미츠, 아이젠하워, 심지어 해리 트루먼도 항공모함의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고, 8군 사령관인 Walton Walker 장군(서울 워커힐호텔이 바로 이분의 이름을 딴 것이죠)의 이름을 딴  M41 워커 불독전차의 이름도 있는 마당에 맥아더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것은 들어본적이 없습니다.

 

매우 종합적인 책이라 중반 이후의 자세한 대 중공군 전투의 묘사는 잘 눈에 들어오지 않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미국인의 시각에서 봐서 그런지 한국전쟁 전역에서 정작 이 땅의 주인인 한국인/한국군의 평가에 대하여는 매우 인색하다는 점입니다. 물론 그 당시 우리 군의 수준이나 한국정부의 역량이 그다지 주목할만하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지나치게 단순하게 그려져 있어 아쉬웠습니다. 

 

또한, 번역자들의 남/녀간 역량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용어선택에서 ‘이건 좀 아니다’하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가끔 있군요. 예컨대 airborne(공수부대)임이 명백한 부분을 ‘공군’으로 옮겼다든지 하는 것들입니다. (2009. 8.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