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영화

[책] 2차대전 유럽전역 항공역사에 대한 종합선물같은 책 "마스터즈 오브디에어 Masters of the Air"

더사문난적 2023. 8. 20. 01:24

 

<Masters of the Air : 나치독일에 맞서 싸운 미국 폭격기 승무원들의 이야기> 도널드 밀러 저, 이동훈 번역, 2023 행북


2차대전의 유럽전역에서 독일과 소련이 동부에서는 지상전을 중심으로 격돌하였다면, 서부유럽에서는 상당기간 하늘과 바다에서 전쟁이 벌어졌다. 바다에서는 영국과 소련으로 가는 보급선을 차단하기 위해 독일이 유보트를 동원해 공격하고 이를 막는 해전이 치열했던 것 만큼, 하늘에서는 초반 독일이 영국을 공격한 Battle of Britain 이후 1942년 즈음부터는 판세가 바뀌면서 영국과 미국의 폭격기들이 추축군의 주요 시설과 도시를 공격하는 '전략폭격'에 나서고 이에 독일이 맞서는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이 책은 유럽전역에 참가한 미국 제8공군(Eighth Air Force)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하게 다루는 종합판 백과사전과 같은 저작이다. 2차대전 항공사를 다룬 책을 많이 보아왔지만, 유럽에서의 미육군항공대의 활동을 이처럼 종합적이고 완성도 높게 다룬 책은 없었던 듯하다.

 

전쟁이 항공발전에 기여한 속도가 놀라운 것이 라이트 형제가 최초로 동력비행에 성공한 게 1903년으로 사람이 하늘을 날기 시작한 것은 이제 겨우 120년 남짓이다. 라이트 형제의 조악한 비행기 이후 40년도 안되어 공군은 수천대의 폭격기를 한꺼번에 날려 도시를 잿더미로 만들고 수만-수십만의 사람들을 죽이는 일이 가능해졌다.

 

내용을 볼수록 역시 미국의 막강한 경제력과 전시동원능력을 새삼 깨닫게 되는데, 항공기 1,200대, 병력 2만에서 시작한 미국 공군(육군항공대)는 1944년이 되자 보유댓수가 8만, 병력 240만의 엄청난 규모로 성장한다. 1944년 3월 한달에만 미국은 9천대의 항공기를 생산. 이러한 규모의 장비와 병력을 확보하고 인력을 확충하고, 자원을 보급하며 작전을 해내는 역량이 대단하다.

 

독일도 만만한 상대는 아니어서 44년 초반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막아온 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장거리 항속능력을 갖춘 미국의 P-51 무스탕이 호위전투기로 등장하며 폭격기를 밀착 방어할 수 있게 되고, 아무리 많은 연합군 폭격기를 격추해도 더 많은 가공할 물량을 투입하는 미국의 경제력에는 역부족이었다. 45년 2월 3일 베를린 폭격을 위해 동원된 B-17만 900대에 이르고, 같은날 정유시설 폭격을 위해 출격한 B-24도 400여대에 달해, 하늘에 떠 있는 폭격기부대의 전체 길이만 480km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 책의 장점은 미 제8공군의 초창기 기지건설부터 시작하여 전략폭격, 폭격기 만능론과 실전에서의 실망스러운 전과, 루프트바페의 만만치 않은 대응, 유럽상공에서 격추된 포로들, 드레스덴 공습과 같은 비인도적 폭격의 딜레마, ‘중립국’ 스위스의 실상, 독일의 신무기 제트전투기, 전후 미군의 철수에 이르기까지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이슈들을 다양한 참전 당사자들의 인터뷰와 일화를 더해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지옥은 2만5천피트(7.6km) 상공에 있다”는 말처럼 폭격기가 이 고도에서 비행하며 폭탄을 떨어뜨리는 임무를 수행하는 유럽 상공은 공격측/방어측 모두에게 가혹한 곳이었다. 43년 8월 슈바인푸르트 공습에서 하루에 미군 중폭격기가 60대나 격추되었다. 1942년 여름-가을 기준무사히 전투기간을 마치지 못한 미8공군 병력의 비율은 73%. 57%가 전사 또는 실종, 16%는 사고로 순직하거나 장애를 입어 비행이 금지되었기 때문. 미군은 25회의 출격임무를 완수하면 본국으로 귀환하거나 지상근무로 재배치하도록 했는데, 25번 출격할 때까지 살아있을 확률은 1/5도 안되었다. 

 

탐 행크스가 수송선단을 호위하는 미국구축함 함장으로 나온 영화 “그레이하운드”에서 유보트를 격침하고 환호하는 부하들이 “50명의 Krauts (독일군을 비하하는 표현)를 저세상으로 보냈다”고 하자, 함장이 “아냐 50명의 영혼(souls)이지” 라고 대꾸하는 장면은 꽤 인상적이었다.유보트 한척에 50명이 탄 것처럼, B-17 한 대마다 조종사, 항법사, 폭격수 등 10명이 탑승한다. 

 

미제8공군에서만 전사 2만8천명, 항공기 탑승자의 12.3% 정도가 희생되었고, 영국공군 폭격기부대에서는 11만명 중 5만6천명이 전사하여 전사율이 51%, 독일 공군의 전사자는 7만명으로 추산될 정도로 유럽 하늘에서 사라진 생명은 엄청난 규모였다. 미국과 영국의 폭격에 피해를 입은 독일인들의 실상도 저자는 가감없이 전달하고 있다.


전쟁에 참여한 유명인들의 일화들도 흥미롭다. 영화배우 클라크 게이블, 윌리엄 와일러 감독과 멤피스 벨 이야기, 척 예거, 케네디 대통령의 큰 형 등등. 

 

각설하고, 미군의 시점에서 설명하는 것으로는 2차대전 유럽 항공전을 다룬 끝판왕 같은  책, 이를 기초로 드디어 스필버그와 탐 행크스가 제작한 드라마가 9월에 애플TV에서 공개된다고 하니 이 역시 기대가 됩니다 (2023. 8.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