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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진실의 흑역사 - #인간은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한다, 톰 필립스

더사문난적 2021. 2. 10. 01:17

 

<진실의 흑역사, #인간은입만열면거짓말을한다> 톰 필립스 지음, 2020년 윌북

 

원래 제목은 “Truth : A Brief History of Total Bullsh*t” 인데, 국내 출판사에서 좀 부드러운 이름을 달았다. 저자인 톰 필립스는 영국에서 팩트체킹 매체 'Full Fact'의 편집자로 일하는 사람이다.

전작인 <인간의 흑역사>를 재미있게 본 기억이 나는데 이번에 새로 책을 출간하였다고 하여 바로 구해 보았다. 이 책에서는 잘못된 정보, 사기꾼, 정치인의 거짓말, 장사꾼의 거짓말, 가짜뉴스, 집단망상 등 인간의 허위와 과장의 역사를 추적한다.

 

약 270쪽 정도로 별로 두툼한 분량은 아니지만, 워낙 다루고 있는 인간의 허위의 역사에 대한 항목이 많다. 전반적으로 위키피디아나 인터넷 검색을 통해 온라인으로 취재하고 수집한 이야기들을 기반으로 깔고 저자의 논평을 곁들여 한 권의 책으로 엮은 일종의 ‘조립식 주택’ 같은 느낌이지만, 그래도 이러한 재조합을 잘 해내는 것도 작가에게 요구되는 역랑이라고 생각한다. 잘 몰랐던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을 발견해가며 일상생활에서 '개소리'를 구별할 수 있는 시야를 넓힐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책이다.

 

문명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출판매체의 숫자나 정보량이 많지 않았던 시절에도 거짓된 정보는 진실을 압도했다.

 

1789년 제임스 레널은 아프리카 지도를 만들면서 상상력을 동원해서 거대한 산맥인 ‘콩’산맥'을 표시한 지도를 만든다. “그까이꺼” 어차피 가본사람도 없는 미지의 대륙에 그냥 ‘그려 넣은’ 내용이 버젓이 지도에 실리자 이후 100년 가까운 오랜 시간동안 사실로 받아들여졌고 많은 지도제작자들이 따라하였다. 심지어 1802년에는 에런 애로스미스라는 사람이 한 걸음 더 나아가 아프리카에 존재한다고 오랫동안 믿어왔던 '달의 산맥'과 '콩 산맥'이 연결된 지도를 내놓았다. 웃기는 것은 수많은 탐험가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이들 산맥을 직접 보았거나 탐험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러한 '구라'의 사례는 너무도 다양하다. 1909년 북극점을 누가 최초로 정복했는가를 놓고 미국 군인인 피어리와 의사 프레데릭 쿡이 논란을 벌였다. 뉴욕타임즈는 피어리를, 뉴욕 헤럴드는 쿡의 주장을 실어주었다. 결국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쿡은 엉터리 주장을, 피어리는 북극점에서 약 40km가까운 곳까지는 갔으나 (본인은 그곳이 북극점이라고 믿었을 가능성이 높음) 결국 ‘북극점’에 도달은 못한 것이라고 한다.

 

다양한 사기꾼들의 역사를 추적해 보는 내용도 흥미롭다. 1823년 스코틀랜드에서 많은 이주민을 모집해 중남미에 있지도 않은 '포야이스'라는 나라로 이주하도록 한 사기꾼 그레거 맥그리거 장군 사건, 1951년 한국전쟁에 타인의 신분을 도용해 군의관으로 참전하고 심지어 많은 사람을 수술해 생명을 구한 퍼디낸드 디메러 사건, 엄청난 미국인 부자로부터 상속을 약속받은 사람이라는 주장을 하며 프랑스에서 많은 돈을 빌려 사기를 친 테레즈 욍뵈르 사건. 욍뵈르는 자신의 정체가 밝혀질 위기에 처하자 기발하게도 비효율적인 프랑스의 재판제도를 악용한다. 가짜 원고를 내세워 자신에게 소송을 제기하도록 한뒤 장기간 지연시킨 것이다. 사기꾼의 수법과 왜 사람들이 이들에게 빠져들었는지 분석하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다.

 

하지만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 중 현시점에서도 중요한 대목은 바로 언론, 가짜뉴스에 대한 부분이다. 저자는 언론의 역사에서 가짜뉴스가 차지한 비중은 항상 일정 수준 이상이었다는 점을 실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1835년 미국 뉴욕에서 발간된 ‘선’지는 "고배율 망원경으로 관측한 결과, 달나라에는 박쥐인간들이 문명을 이루고 산다"는 것이 밝혀졌다는 특종을 한다. 물론 완전 엉터리 기획‘소설’이었지만 상당기간 큰 인기를 끌고 신문매출 확장에 큰 도움을 주었다.

언론관계자들의 사실보도에 대한 태도는 애초부터 삐딱했는지 모른다. 1887년 창간된 잡지 '더 라이터'의 편집장은 기자의 자질 중 필요한 것은 “일을 훌륭하게 꾸며낼 줄 아는 것”이라고 했을 정도로 일부의 단편적인 사실만을 가지고 내용을 부풀리거나, 아니면 아예 그마저도 없는 상황에서 기사를 ‘창작’하는 경우도 많았다.

 

기자의 상상력이 발휘된 사례가 런던의 연쇄살인마 '잭 더 리퍼' 이야기나, 후일 존 트라볼타 주연으로 크게 흥행에 성공한 '토요일 밤의 열기' 이야기이다. 토요일 밤의 열기는 기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인데, 문제는 기사 자체가 기자가 현장에 가보지도 않고 지어낸 ‘창작물’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가짜 뉴스 사례에 대한 팩트 체킹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가십위주의 타블로이드 신문이 아닌 뉴욕 타임즈와 같은 신문도 예외가 아니다. 북극점 정복논란에서 쿡과 대립한 피어리를 적극 옹호한 곳이 뉴욕타임즈였고, 1910년 뉴욕타임즈는 헬리혜성이 접근한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혜성의 꼬리부분에 인간에게 치명적인 유독가스 성분이 있다는 프랑스 천문학자의 주장을 실었다. 이 때문에 많은 미국인들이 집에 공기차단장치를 설치하거나 방독면을 사재기하는 소동이 일어났다고 한다.

 

요즘도 문제가 많은 선정적인 제목달기(낚시글)와 서로 베껴 쓰기의 역사 역시 유구한 모양이다. 1621년 로버트 버턴은 “요즘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책을 팔려고 내놓을 때 기상천외한 제목을 붙이곤 한다”고 쓴소리를 하였으며, 1734년에 “Craftsman“ (아마 잡지 제목인 듯)에서는 “언론이란 서로 마구 베끼는 습성이 있어 그릇된 정보가 한번 실리면 누군가 신속히 반박하지 않으면 나머지 신문에도 모두 실리는 것이 보통이다”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인류의 역사에서 거짓은 항상 진실보다 힘이 세고 수적으로도 우세하였는데, 이렇게 가짜가 우위에 있었던 원인을 작가는 7가지로 분석한다.

 

1. 노력장벽 : 사안의 중요도에 비해 진위확인에 필요한 노력이 상대적으로 큰 경우 거짓이 유리하다

2. 정보의 공백 : 진실한 정보 자체가 등장하지 않는 경우, 거짓된 정보가 일종의 기준점으로 작용해 사람들의 인지편향을 가져오는 기준점으로 작용한다.

3. 개소리 순환고리 : bullshit feedback loop 미심쩍은 정보가 처음 등장하더라도 이를 여러사람이 옮기면서 상식으로 자리잡게된다. 신문에서 위키피디아 내용을 베껴 기사를 쓴다 -> 위키피디아는 그 보도를 근거로 제시한다 -> 이런 순환이 반복된다는 식이다.

4. 진실이라 믿고 싶은 마음 : 확증편향. 우리가 무엇인가를 참이라고 믿고 싶으면 우리 뇌는 그 내용에 대하여 진위를 가리는데 게으르게 된다.

5. 자존심의 덫 : 우리는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한다.

6. 무관심 : 우리는 잘못된 정보를 몰아낼 기회가 있다고 이러한 길을 꼭 택하지는 않는다.

7. 상상력의 부족 :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주변에서 들리는 이야기가 대부분 참이라고 전제하고 살아갈수 밖에 없다. 때문에 어떤 정보가 거짓일 가능성을 과소평가하게된다. 기본적으로 거짓이라는 주제 자체에 관심을 충분히 기울이지 못한다.

 

인터넷 환경이 발달하면서 가짜 뉴스나 과장된 보도, 편향된 정보가 홍수를 이루고 있다. 저자의 분석처럼 거짓 정보가 유리한 이유는 차고도 넘치는데, 진실이 이를 뚫고 나오기는 힘들다. 특히 우리나라의 현실은 위 3번째 이유 ‘개소리 순환고리’의 부정적인 영향이 크게 작동하기 쉬운 환경이다.

저자는 우리가 항상 개소리 속에서 살 수밖에 없으며, 우리가 할수 있는 최선의 대응은 항상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개소리의 홍수 속에서 깨어 있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진실의 힘이 거짓을 압도할 수 있다는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기로 책을 마무리하는 점은 조금 아쉽다.(2021. 2. 9.)

 

 

사족1. 저자는 벤자민 프랭클린 매니아인 듯 하다. 가짜뉴스의 흑역사에 프랭클린이 남긴 족적은 너무도 뚜렷하다. '가짜뉴스의  선구자'에 해당하며, 이 책 여기저기에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사족2.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보면, 번역서의 제목(진실의 흑역사)이나 부제목(인간은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한다)은 적절한 제목은 아닌 것 같다. 빌브라이슨 책에 엉뚱하게 ‘발칙한’을 계속 붙이는 것처럼 ‘흑역사’라는 단어가 뭔가 독자를 끌어들인다고 생각했던 듯. 이 역시 거짓과 허위를 팔고사는 출판사의 낚시성 제목달기가 아닌지.